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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기/나의 여행

시즈오카 : 후지노미야 (시라이토 폭포, 타누키 호수)

by 중(中)생 2024.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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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를 다녀온 후 버스 시간에 맞춰 다시 후지노미야역 근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은 역과 연결된 육교 바로 아래에 있다. 운행 편이 많지 않다. (저녁에 이야기해 보니 현지인들도 폭포까지 있는 버스가 있다는 것을 모르더라...) 돌아오는 버스 편은 단 2대로, 하나는 1~2시에 다른 하나는 6시쯤이었다.

 

시라이토 폭포 하나만 바라보고 간다면 굳이 일찍 움직일 필요 없이 오전에 후지노미야 시내를 구경, 14:40 차를 타고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시즈오카 편에서 계속 이야기하듯이, 렌터카가 있다면 시간도 많이 세이브하고 더 많은 것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시라이토 폭포 가는 버스와 경로

 

약 2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시라이토 폭포 근처에 도착한다. 시라이토 폭포 근처까지는 그래도 도심의 느낌이 있지만, 정거장과 정거장 사이의 거리가 멀다. 도무지 고속도로 같은 곳을 걸을 자신이 없어 한 정거장 빠르게 내려버렸는데, 고즈넉하고 만화에서 볼법한 일본 시골 버스 정류장이었다. 버스 역 주변으로 정말 아무것도 없다. 

 

시즈오카에서 의지할 것은 구글 맵 단 하나뿐이니, 보조배터리를 꼭 잘 챙기다. 다행히 지도가 안내해 주는 대로 5분 여가량 걸어가니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며 깔끔히 조성된 공간이 나온다.

 

시라이토 폭포 버스정류장

 

시라이토 폭포

주소: 〒418-0103 静岡県富士宮市上井出273-1

시간: 매일 8:30~16:30

URL: https://www.japan.travel/ko/spot/1512/

 

시라이토 폭포는 후지산의 눈이 녹은 물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유독 물의 색이 맑고 시리다. 확실히 투명하다기보다는 시린 느낌이다. 어딘가 북극 물밑의 빙하 색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거침없이 떨어지는 물줄기라 거품이 많아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폭포 입구에는 꽤 큰 하천과 기념품 가게가 있는데, 본디 이 앞에서라면 후지산이 잘 보여야 하지만 아쉽게도 날이 흐리고 구름이 많아 후지산을 볼 수 없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후지산을 볼 수 있다는 말이 괜스레 농담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 덕을 많이 쌓았다고 생각하면 그 운명을 이곳에서 판결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시라이토 폭포 근처 가게와 

 

입구 들어가는 길에 시라이토 폭포 관련 안내판이 있으니 한 번 지도를 보고 움직이면 좋다. 2개의 폭포 구역이 있고, 추천하는 순서는 Shiraito Taki no Waterfall을 먼저 보고 Otodome를 보는 것.

 

시라이토 폭포 구역이 유명한 이유는 폭포가 크고 길고 웅장해서라기보다는, 수십 개의 폭포가 한 번에 있기 때문이다. 시라이토 폭포를 검색했을 때 보이는 대부분의 이미지는 오토도메(Otodome)폭포! 막상 시라이토 폭포라고 명칭이 되어있는 폭포는 (적어도 가이드 상에서) 아래 이미지와 같이 굵고 큰 물줄기의 폭포다. 

 

사진을 잘 못 찍어서 그렇지, 실제로 본다면 매우 웅장하다. 소리도 매우 크다! 확실히 물이 떨어질 ㄸ의 힘 때문인지 아래 호수는 깊고 묘한 푸르스름한 빛을 띤다. 이곳은 발 받침대 위로 올라가서 봐야 하는데, 그 공간이 크지 않아 다소 줄을 설 수 있다. 

 

시라이토 관광지 지도와 시라이토 폭포

 

시라이토 폭포를 지나 약간의 숲길을 걷다 보면 탁 트인 공간이 나온다. 그리고 그 공간 너머로 세 면을 둘러싼 폭포의 커튼을 만날 수 있다! 사진으로 실물이 하나도 담기지 않아 너무 슬픈데 정말 장관이다. 각 폭포의 크기도 작은 편은 아닌데 무수히 많은 폭포가 모든 벽면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왜인지 모르겠을 자연의 압도감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신비로운 곳이라면 유니콘이 나와도 놀랍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

 

주변에는 많은 물이 튀기 때문에 다소 미끄러운 부분이 있으니 물 근처로 내려갈 때는 조심하자. 물 근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우무 같은 것이 있어 더욱 신비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가만히 물을 쳐다보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멍 때리게 된다. 자연경관이라 뭐 볼 게 많을까 싶었는데 예상외로 신비롭고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에 눈에 담기가 바빠 한참을 머물렀다. 

 

시라이토 폭포 오토도메

 

당시 아이폰 11을 사용할 때라 다소 화질이 떨어지는데,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핸드폰을 보더라도 이 자연의 웅장함을 제대로 담는 기기는 없었다. 정말 너무나도 담아내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모든 잔상은 마음속에 담는 것으로.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 사진으로 다 담지 못한 웅장함을 부족하지만, 영상으로 담아보았다. 

 

웅장한 폭포의 모습

 

시라이토 폭포에서의 하이라이트는 개인적으로 기념품 가게 맞은편에 있는 커피숍이라고 생각한다. 

날이 흐려 그나마 덜 더웠지만, 생각보다 시라이토 폭포를 보려면 이동 거리가 많아 살짝 더울 수 있는데 마무리로 커피숍에 들어가 땀을 식히며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천국을 맛볼 수 있다. 

 

심지어 꽤 전문적인 커피 가게인지 다양한 원두도 있고 다양한 추출 방법으로 원하는 커피를 만들어준다! 세 종류의 드립백도 판매하고 있는데 꼭 사길. 원두 별로 2개씩만 샀는데 너무 후회되었다. 원두 하나하나 고소한 맛과 산미의 밸런스가 정말 좋았고 특히 향이 매우 풍부해 호불호 없이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맛이다. 

 

 

 

가게에서는 아이스크림도 판매하고 있는데, 근처에 목장이 있어서 그런 건지 어떤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맛이 매우 진하고 좋았다. 홋카이도 아이스크림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뭔가 그런 맛. 홋카이도에서 먹은 아이스크림은 유지방의 비율이 높아 조금 더 크림 같고 꾸덕꾸덕한 느낌이었는데 여기는 그것보다 가볍기는 하지만 향은 풍부해 좋았다. 

 

많은 관광객이 기념품 가게 근처 식당과 커피숍을 이용하는 것 같은데, 제발 이 커피숍을 시도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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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토 폭포의 커피 맛집

 

작은 신사를 배경으로 아포가토를 즐길 때 멈췄어야 하는데...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기까지 시간이 너무 남아 더 깊숙이 들어가기로 결심한 나... 렌터카가 없다면 시라이토 폭포 이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날씨가 조금이라도 안 좋다면 올라가지 말자. 

잊지 말자 이곳은 시즈오카. 관광지들이 오후 4시가 좀 넘으면 문을 닫는다. 

 

시라이토 폭포에서 타누키 호수까지는 버스로 다시 20분가량 이동해야 한다. 호수의 위치가 후지산 중턱쯤에 있는데 올라가다 보면 이 화산이 얼마나 큰지 놀랍다. 너무 커 얼핏 보면 평지 같은데 활화산이라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 중간에 목초지도 나오고, 어린이 공원 같은 곳도 있는데, 여하튼 여러모로 신기하다. 

 

버스 창문을 넘어 보이던 풍경

 

타누키 호수

주소: 〒418-0108 634 Inokashira, Fujinomiya, Shizuoka

시간: 24시간 OPEN

URL: https://tanukiko.com/en/tanukiko/

 

 

이 호수는 제발 내 사진이 아니라 따로 검색해서 보았으면 좋겠다. 이 블로그의 사진은 실패한 사진.. 4월 말에 방문했는데 이때는 겹벚꽃 시즌이어서 꽃도 많았는데 날씨가 도와주지를 않았다. 아쉽게도 호수를 올라가면 갈수록 점점 더 구름 속으로 들어가더니 호수에 도착했을 때는 하늘을 보기 어려운 정도였다. 

 

구름만 없다면 호수의 끝에 후지산이 보인다. 

특히 일출 때 온다면 후지산 정상 위로 해가 걸리며 그 모습이 호수에도 비쳐 정말 장관이라고 하니,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한 번쯤 시도하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자연뿐만 아니라 잠수함 같이 중간중간 뜬금없는 구조물도 있다. 

 

그 외에도 타누키 호수는 여러모로 유명한 곳인지 구경하는 내내 다양한 연령대와 그룹이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바람도 많이 불고 날이 흐려서 꽤 추웠는데 다들 민소매 입고 사진을 잘 찍더라. 특히 웨딩 사진을 찍는 한 커플이 있었는데 만국의 공통인지 여자분이 추워서 떨면서도 사진 찍을 때만큼은 활짝 웃는 모습이 프로 같기도 하고 존경스러웠다. 

 

호수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ㄷ.

 

아닌 게 아니라 확실히 이곳은 사람이 없어 야영하기 좋다 생각했더니, 호수를 돌아 조금 걸어가자 엄청나게 큰 캠핑장이 나왔다. 한국과 같은 글램핑의 느낌보다는 정말 산속에 텐트를 치고 숙박하는 느낌. 대부분 가족 단위였고 신기하게도 외국인 그룹이 하나 있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것들은 간단한 음식과 캠핑에 필요한 용품들을 팔고 있었다. 역시 이곳 또한 빠르게 문을 닫기는 했다. 

 

후지산에서 캠핑하고 싶다면 위의 url을 따라간다면 캠핑 관련한 내용을 영문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링크를 확인해 보길. 꽤 다양한 장비가 필요해 보여서 관광객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내가 보지 못한 글램핑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곁다리로 풀어보는 후지산 중턱에서 노숙할뻔한 썰. 길고 한탄이 가득할 수 있으니 감당할 수 있는 자만 더 보기를 누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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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이 아니라 정말 노숙할 뻔했다. 산 중턱에서!!!!

일본은 곰도 많고 매년 곰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수십인데 가로등 하나 없는 곳에서 혼자 속으로 눈물 흘리며 이렇게 곰의 밥이 되는 건가, 히치하이크라도 시도해야 하나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지옥과 심연의 지옥을 왔다 갔다 했다. 

 

진짜 제발, 렌터카가 없으면 안 가길 바라고, 날씨가 안 좋으면 가지 말자. 가게들이 무슨 4시부터 문을 닫고 나는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 부들부들 떨며 2시간 넘게 버스만을 기다려야 했다. 아이패드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그거 아니면 지겨워 정말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겨워 죽는다는 것은 좋게 포장한 것이지, 막상 머릿속은 버스가 안 오면 어쩌지 라는 생각뿐이었다.

버스정류장이 버스 정류장처럼 생기지도 않았고, 돌아가는 버스 배차는 단 한대뿐이니 심장이 콩알만 해져 버스 도착 시간 20분 전부터 자리에서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해는 저물고 사람은 없고 주변 가게들도 다 문을 닫았고 그 찻길을 지나다니는 자조차 없었다!

 

숙소 쪽으로 돌아가는 버스는 단 한대뿐이라는데, 가는 날이 장날인지, 구글맵을 보니 그 버스는 연착한다고 하고 얼마나 연착한다는 말도 없고, 그냥 하염없이 지도만 바라봐야 하는 상황. 끝까지 버스가 안 오면 진지하게 산 중턱에서 노숙해야 하나, 어찌해야 하나 다양한 고민과 시뮬레이션을 해야 했다. 

 

지도에 검색해 보니 걸어서 숙소까지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3~4시간... 버스 타고 올라오는 길을 보았을 때 해가 저문 이 시점에서 걸어간다면 죽거나 다칠 확률이 더 높아 보였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버스정류장 표지판 밑에 앉아 있기도 고민되는 상황. 최악의 상황에서는 아까 보았던 캠핑장의 외국인들이나 일본인에게 옆에 하루만 재워달라고 해야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생각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을 때 버스가 나타났는데 내가 타고 온 방향에서 버스가 올라왔다! 나는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멘붕 그 자체... 지도에서는 내가 서 있는 위치가 맞다고 되어있는데 왜 버스는 반대 방향에서 나타나는지. 심지어 멈출 생각 없이 쌩 지나가는 버스의 뒷모습이란.... 마지막 차인데, 맞은편일지라도 버스 정류장에 사람이 서 있다면 관심 좀 가져줘...

 

비도 부슬부슬 오기 시작했는데, 절망과 공포 그 자체. 진짜 당황해서 황망하게 버스가 지나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다행히(?) 버스는 앞에서 유턴을 해서 돌아오는 코스였던 것 같다. 절망 끝에 서있었는데 날 살려준 버스... 진짜 소설 운수 좋은 날 같은 하루. 오전의 행복은 어디로 가고 노숙하지 않은 게 다행이던 생일. 

 

나의 생일을 절망으로 끝내기 싫다는 생각만 하며 반쯤 실신하듯이 버스에 기대어 후지노미야 시내로 돌아갈 수 있었다. 

타누키 호수 캠핑장

 

 

食工房 夢舎 : 정말 너무 마음에 든 식당

주소: 31-23 Motoshirocho, Fujinomiya, Shizuoka 418-0064, Japan

시간: 17:00~23:00 (매주 화요일 휴무)

TEL: +81 544 28 4200

 

후지노미야에는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식당이 몇 개 없었는데 그중 평이 가장 좋았던 곳이었다. 11시에 점심 먹은 이후로 먹은 것도 없고 생일이었는데 타누키 호수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겸 방문했다. 이 식당은 인기가 많은 식당이라 평일에도 사람이 많고 되도록 예약해야 하는 곳이다. 운이 좋게 그냥 방문했는데도 자리가 있어 앉을 수 있었는데, 꼭 해당 식당을 방문하고 싶다면 미리미리 예약하길!

 

평일 저녁 9시가 가까운 시간에 식당에 도착했었던 것 같은데 사람이 매우 많았다. 사람이 많기도 하고 일본어도 할 줄 몰라 쭈뼛거리고 있었는데 혼자라고 하니 사장님이 바 테이블 자리에 앉아도 된다고 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비에 젖어 불쌍해 보였는데 손님이 많은데도 자리에 앉게 해 주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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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분위기와 주문한 메뉴

 

자리에 앉으면 기본 안주를 주시고 메뉴판을 보며 천천히 주문하면 된다. 음식은 양이 꽤 많은 편이라 인원수보다 많은 개수의 요리를 주문하면 남을 수 있다. 음식이 대부분은 일식+양식 퓨전으로 다채로운 맛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혼자 갔지만 생일이라는 핑계로 이것저것 주문해서 먹었는데 모든 것이 다 맛있었다. 맛하나는 완전 보장이 되는 식당! 꼭 맛 때문이 아니라도 이 식당을 추천하는 이유는 가게 사장님 때문!

 

가게 리뷰에 쓰여 있는 것처럼 매우 인품이 좋으신 사장님이 운영하는 가게다. 바테이블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말도 걸어주시고 도란도란 이야기하기에 딱 좋다. 내 양 옆은 단골손님이었는지 한참 이야기 하시다 사장님이 내게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말을 걸었다기보다는 AI시대, 파파고가 멋지게 내 말들을 번역해 주었다. 그 정도로 식당에 방문한 사람들을 따스한 마음으로 대해주신다. 

 

곁다리로 풀어보는 가게 사장님이 만들어주신 나의 생일날 하이라이트. 감정 가득한 글이니 관심이 없다면 지나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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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앞서 말했듯이 젖은 생쥐의 모양새로 식당에 들어갔는데, 일본어도 하나 못하는 여자아이 혼자 식당에 앉아 있으니 왜 왔는지 물어보셨다. 자연스럽게 혼자 여행을 와 타누키 호수를 다녀왔다고 하니 신기해하면서 옆자리 분한테 '여기 여자아이 혼자 여행 중이래!'라며 스몰토크를 시작하셨다. 

 

소도시인만큼 외국인 관광객이 별로 없는데, 거기다가 후지노미야 안쪽에 위치한 식당이다 보니 외국인 손님이 없어 더욱더 관심을 받게 되었다. 어쩌다 방문한 당일이 내 생일이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별생각 없이 생일날엔 스스로에게 선물로 근사한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것이라고 했다. 아니, 했다고 생각했다. 번역기의 한계인지 사장님은 내가 음식을 먹고 이 음식이 내 생일 선물이 되었다고 이해하신 듯... 너무 기뻐하시며 옆자리 남자분에게 자랑을 했고 그분은 연신 '야사이시'를 남발했다. 

 

오해 아닌 오해 덕분에 사장님에게 호감 점수 +100점쯤을 받은 것 같다. 아내이신지 잘 모르겠지만 홀을 맡으신 여성분도 불러 이 아이가 자기 음식이 선물이라고 했다는 것부터 시작해 기분이 아주 좋아지신 사장님.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이렇게라도 이쁨 받으니 너무 좋았다. 뭐 하나 먹을 때마다 맛있는지, 괜찮은지 물어보고 내가 엄지 척에 깨발랄을 떠니 사장님이 껄껄껄 웃으시는 게 너무 좋았다.

 

기분도 좋고 생일인데 당연히 술을 마셔야지. 돗쿠리 하나 주문해 마시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던 건지 오른쪽 자리의 여성 분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아니 다들 메뉴 2~3개에 술 한 잔쯤은 당연히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얼굴색이 하나 안 바뀌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여성분들은 연신 와 대단하다~를 시전 하기 시작했다. (아 물론 사장님이 그사이에 또 한국 아이이고 혼자 여행 중에 버스 타고 타누키 호수를 다녀왔고 오늘이 생일인데 내 음식이 선물이라고 했다는 자랑 또한 빠트리지 않았다)

 

여성분들과 시작된 수다는 금세 한국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배우들 이야기로 연결되었다. 아니 어찌 일본 분들이 한국인인 나보다 한국 드라마를 더 잘 아시는 것 같다! 두 분은 최근 <사랑의 불시착>을 보며 현빈이 너무 멋지다고 그렇게 멋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는 와중에 갑자기 여사장님이 케이크에 초까지 붙여서 가지고 와주셨다. 여기서 진짜 눈물 글썽. 너무 감동해 버렸잖아. 

내가 너무 감동하니까 남자 사장님이 껄껄 웃으며 생일축하한다 해주고 옆자리 손님들도 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ㅋㅋㅋ 아니 어느 식당에서 사장님이 손님 몰래 케이크까지 사와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냐고 ㅠㅠ 심지어 바 테이블뿐만 아니라 뒤에 앉아서 밥 먹는 곳에서도 같이 축하해 주셨다! 어쩌다 보이 이 가게 모두에게 생일 축하를 받아버린 나. 

 

여행을 안 왔다면 꼼짝없이 회사에 갇혀 하루를 보냈어야 하는데 낯선 땅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온 내게 그들의 생일축하 노래와 케이크가 정말 감동적일 수 없었다. 그 어떤 비싼 케이크보다도 나를 위해 사주신 그 조각 케이크가 너무나도 소중했다!!! 그 와중에 센스 백 점, 천 점, 만점의 사장님, 배부르면 안 먹어도 된다고ㅠㅠㅠ 포장해 줄 테니까 구경만 하라는 그 말에 2차 감동. 눈물 팡팡. 

 

이렇게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그냥 케이크를 덮고 가게를 나가겠는가! 당장 돗쿠리 한 병 더 주문했다. 술을 꽤 마시니 뭔가 말도 더 잘 통하는 것 같고 그랬다. 사장님과 옆자리 여성분들과 한 30분 넘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 끝에 나는 사장님과 번호 교환을 했고, 옆자리 여성분들까지 해서 다 함께 사진을 찍었다. 누가 찍자고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지금 봐도 너무 웃긴 사진. 근데 사장님 진짜 쾌남. 내 스타일이야 너무 좋아 ㅋㅋㅋ

 

사진까지 찍고 가게를 나서려는데 여기서 사장님 3차 심장 포행을 시전 했다. 아무리 보아도! 금액이 너무 적게 나왔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한참 부족한 느낌이었다. 옆자리 여성 분들에게 실례일 수 있으니 사장님께 계산 제대로 한 거 맞냐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는데 사장님 윙크 날리시며 자기 맘이라고 하는 그 여유. 어찌 반하지 않겠는가.

 

그 와중에 여자 사장님도 맞다고 괜찮다고 케이크만 잘 챙기라고 하는데 여기서 진짜 심장 폭행 당했다. 하루의 힘듦 그 두 분 덕분에 다 풀려버렸다. 풀리는 게 뭐야, 힘듦 그 이상으로 사랑을 받아버렸다. 

 

가게를 나서면서는 옆자리 분들이 차로 숙소까지 내려주셨다! 아 물론 대리가 와서 운전을 했는데, 여전히 일본에 여자 혼자 놀러 온 용감한 아이라는 소개가 되어버렸다. 운전해 주시는 분하고도 친구를 해버리고... 내가 또 언제 식당 옆자리에 앉은 분들의 차를 타고 편안하게 숙소로 이동해 보겠는가... 강렬한 23년도 생일. 

 

아직도 생일 때가 되면, 아니 생일이 아니더라도 이때만 생각하면 얼굴에서 웃음을 숨기기 힘들다. 내게 정말 좋은 기억을 한가득 심어주신 분들. 평생 감사할 예정이다. 

맛있었던 사케와 사장님이 사주신 생일 케이크

 

신사에서부터 하루를 돌이켜보면 참 다이내믹했다. 하지만 이것이 여행의 묘미겠지. 타누키 호수에서도 참았던 눈물 사장님의 케이크에 눈물 찔끔. 참 잊지 못할 생일이 되었다. 사장님과 연락처도 교환했는데 꼭 다시 방문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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