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의사 '갓윈 백스터'의 손을 통해 죽었다 다시 살아난 인물, '벨라 백스터'가 여행을 하며 성장해 나가는 여정을 그린 영화로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영화 초반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고 호기심 많던 벨라 백스터가 세상을 마주하면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고정 가운데 다양한 일들이 펼쳐지고,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들로 가득하지만 매력적인 영화다. 특히 그녀의 끝없는 욕망과 호기심 때문에 <가여운 것들>은 청소년 불가가 되었다.
청소년 불가인 이유가 있다. 누드가 많고 당혹스럽게 느껴지는 장면들이 꽤나 나오니 조조로 보는 것은 지양하길 바란다.
아래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싫으신 분들은 영화를 먼저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가여운 것은 누구인가
<가여운 것들>의 영문 제목은 <Poor Things>. 예고편에서 엠마 스톤이 연기하는 벨라 백스터는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기에 당연히 그녀의 가여움을 풀어나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제목은 복수로 벨라 한 명이 아닌 여러 가여움을 암시하고 있다.
왜 제목에 복수를 썼는지 의아했는데,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갈수록 다양한 형태의 가여운 자들을 보여준다. 우선 뛰어난 외과적 재능을 지녔지만, 어딘가 비뚤어진 '갓윈 백스터' (윌렘 대포)이 있다.
그는 아버지에게 학대 아닌 학대를 당하며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해 줄 주도 모르는 사람이다. 벨라를 정말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지만, 그의 비뚤어짐은 벨라를 집에 가두는 형태로 나타난다. 영화의 끝 무렵 진정으로 벨라를 자식으로서 사랑하는 마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의 마지막 순간에 벨라와 조수 '맥스'(라미 유세프)를 제외하면 그 곁에 남은 이는 없으니 어찌 보면 참으로 외로운 삶을 산 사람이 아닐까 싶다.
또 다른 가여운 자는 변호사 '던컨' (마크 러팔로).
던컨은 전형적인 카사노바로, 스스로 한 여자에게 정착할 수 없다는 말을 벨라에게 한다. 하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벨라에게 빠져들었고, 그가 이전 관계에서 혐오한 '집착'이라는 감정이 싹튼다. 그는 끝없이 벨라의 관심을 원했고, 그에게만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그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벨라는 더 큰 세상을 갈망했고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던컨은 파멸했다. 모든 돈을 잃었고, 삶의 재미도 잃고 한때 미치도록 사랑한 연인을 저주한다. 다양한 사랑을 한다고 했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한 그 또한 가여운 자다.
오히려 반전처럼, 벨라는 가엽지 않은 자이다.
다리 밑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여자. 무려 임신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그녀는 삶을 끝내려고 했다. 갓윈으로 인해 그녀의 배 속에 있던 아기의 뇌를 이식하여 벨라로 태어나, 엄마이자 아이인 차마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벨라.
이후 이 사실을 알고도 그녀 자신을 '벨라 스터'라고 정의할 정도로 내면적으로도 외면적으로도 그 누구보다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초반 몸도 제대로 가눌 줄 모르고 몸의 반응에만 집중하던 그녀는 세상을 접하며 철학에 눈을 뜨고 눈에 보이지 않고 몸으로 느낄 수 없는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한다.
오히려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배워가기에 그녀는 그녀만의 행복과 기준을 세울 수 있었고 세상의 시선을 벗어날 수 있었다.
# 관전 포인트
무성영화 시대의 감성
영화 초반, 벨라가 아직 갓윈의 집 밖을 벗어나 본 경험이 없는 시간은, 흑백으로 진행된다. 흑백 시퀀스는 묘하게 프레임 수가 적어 움직임이 투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투박함으로 인해 영화 속 세계관을 현실과 더욱 동떨어지게 하는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캐릭터들이 대화할 때 음성과 움직임 사이에 묘한 간극이 있는데, 이 틈이 벨라가 인지하는 세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익숙한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고, 사차원의 세계를 느낄 수 있다.
초현실적인 세트와 음악
초현실적인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감독은 모든 촬영을 세트에서 했다고 한다. 오히려 타 영화와 다르게 세트처럼 보이게 한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우리가 아는듯한 장소와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결합하여 마치 명화 같은 장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영화 전체적으로 흐르는 클래식 선율 또한 집중해 볼 만하다.
초반에는 불협화음에 가깝고, 발걸음 소리, 말소리 또한 불협화음과 연결되어 하나의 음향효과로 표현되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우아한 클래식으로 변해간다. 벨라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소리를 통해서도 성장을 체감할 수 있는 연출이 흥미롭다.
벨라의 움직임, 말투와 음향효과가 갈수록 현실과 같아지니, 오히려 시각적인 구성은 비현실적으로 표현된다. 벨라는 이성적이지만 시각적인 비현실성이 커니 오히려 영화의 후반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이상한 것인가 의문점을 가지게 하기도 한다.
엠마 스톤의 연기
연기가 정말 미쳤다. 엠마 스톤이 이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줄이야. 프레임 안에는 '벨라 백스터'만 존재한다, 엠마 스톤은 없다. 엠마 스톤을 닮은 사람조차 없다. 정말 벨라 백스터 그 자체로 완벽하게 몰입하여 볼 수 있다.
언급한 내용 외에도 이 영화에는 관전 포인트가 한가득하다. 하나 아쉽다면 굳이 필요 없을 것만 같은 청불 장면들일 것 같다. 그렇게까지 반복되거나 자주 조명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데, 이 또한 감독의 표현 방식이겠거니 하며, 이번 리뷰를 마무리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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