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제들>, <사바하>로 익히 알려진 장재현 감독의 2024년 오컬트 영화다.
두 영화에서도 한국의 굿 장면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는데, <파묘>에서는 제대로 한국의 오컬트적인 요소를 담아냈다. 오컬트를 소재로 하는 국내 영화가 많이 없어서 기대하기도 했지만,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티저에 나오는 김고은의 (무당 화림) 대살굿 장면 때문이다.
아주 뜬금없지만, 김고은의 굿 장면보다 더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것은 이도현(봉길)이 화림의 신발을 묶어주는 장면이었다.
나만의 묘한 덕질 포인트로, 모든 것을 헌신하는 것을 넘어서 약간의 집착처럼 보이는 '말 수 없는' 남자 캐릭터를 좋아하는데, 예고편에서 그러한 냄새를 맡았다. 실제로는 그런 포인트가 몇 없었다. 봉길에게는 서브남주 앓이를 할 수밖에 없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스토리 상 충분히 보이지 못해 아쉬웠다.
대살굿 장면은 김고은이 진짜 빙의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화림 그 자체였다.
영화의 초입에서 나오는 대살굿 장면은 여타 다른 영화에서 나온 굿 장면과는 차원이 다른 에너지를 담아내고 있다. 대살굿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몸이 들썩이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저 차원의 기운을 불러내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 장면 하나 때문에 <파묘>는 볼만한 영화가 되었다.
감독은 관객에게 열린 결말을 남기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파묘>에서 최대한 오락성과 화끈함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데, 그 노력 때문인지 영화는 정말 깔끔하게 끝맺음을 짓는다. 덕분에 공포스러운 장면이 다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나설 때는 매우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다. 혼자 살아서 <파묘>를 본 이후에 잠을 잘 수 있을까? 싶다면 걱정 없이 보아도 될 것 같다.
*앞으로 나오는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총 6가지 작은 소제목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단원마다 발단, 전개, 위기가 있고 전체적으로 클라이맥스와 결말까지 나오게 된다. 집중력이 떨어진 현대 사람들에게 이런 옴니버스 형태로 각각 큰 대목을 나누어 한 번 숨 쉬고 돌아갈 수 있어 낯설지만 나쁘지 않은 시도라고 생각된다.
영화의 중반부까지, 미국 가족의 조상 관을 태우는 지점, 영화는 매우 흥미롭게 지나갔다. 이유도 타당하였고 숨겨진 이야기도 있었고 기승전결이 매끄러웠다. 후반부 내용을 위한 서막으로 사용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오히려 이 한국을 팔아먹은 선조에 관한 이야기를 더 발달시켰다면 더욱 탄탄한 스토리를 가지지 않았을까 싶다.
후반부에 나오는 일본 도깨비 설정이 스토리를 더욱 웅장하게 만들기보다는 영화의 몰입감을 방해했다. 아픈 과거의 역사를 담아내 보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각 악귀의 개연성과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도무지 봉길이 왜 빙의되었는지도 이해 못 하겠고, 왜 간을 빼먹는지도 모르겠고, 모르겠는 것 투성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본 도깨비는 눈만 마주쳐도 다 죽인다고 하는 말도 허무맹랑하게 다가왔다.
화림의 과거를 포함해서 영화에는 잘린 도깨비에 대한 설정이 많았을 것 같은데 오히려 이 부분만 집중하여 이야기를 구성하였어도 좋지 않았을까. 숨어진 반전을 찾으려다 실패한 느낌이라 후반부 갈수록 아쉬웠던 영화. 화림의 대살굿 하나만큼은 볼만하니, 한국적인 요소나 오컬트를 좋아한다면 가볍게 보기 나쁘지 않은 <파묘 후기는 여기까지.
'놀기 > 나의 문화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후기 : <가여운 것들>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 (0) | 2024.03.11 |
---|---|
영화 후기 : <추락의 해부> 꼭 해부했어야만 했을까 (0) | 2024.03.03 |
영화 :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3) | 2024.02.08 |
영화 : 스즈메의 문단속: 다녀왔습니다 (0) | 2024.01.15 |
전시회 : 올해의 작가상 2023 (MMCA 서울) (0) | 2024.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