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국내에서 하나의 전시만 볼 수 있다고 하면 '올해의 작가상'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매년 휴가를 써서라도 다녀오는 전시이다. 주로 4명의 작가가 선발되며,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참 신기하게도 작가별로 다른 형태의 작품과 주제를 전시하지만,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을 듣다 보면 한 해가 보이고 요즘 우리 사회가 보인다. 아마 그렇기에 올해의 작가로 선별되었겠지만.
참 재미있게도 매년 나의 마음을 훔치는 작가 한 분씩 있다. 말 그대로 내 마음을 훔치는 작가. 올해는 '갈라 포라스 김'이다. 처음으로 나와 비슷한 결의 고민을 표현한 작가이자 그걸 실제로도 실천한 작가. 작가로서의 철학이 처음엔 눈길을 끌었고 나중에는 작품이 내 발걸음을 세웠다.
내가 대학교 시절 수업을 들으며 가장 감명 깊게 들었던 수업은 박물관 같은 기관의 존재가 필요한지였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박물관을 '고고학적 자료, 역사적 유물, 예술품, 그 밖의 학술 자료를 수집, 보존, 진열하고 일반에게 전시하여 학술 연구와 사회 교육에 기여할 목적으로 만든 시설'이라 정의한다. 하지만 유물, 예술품이 전시되면 본디 그 기물이 가지고 있던 '기능'을 잃게 된다. 과연 기물의 기능을 잃으면서까지 우리가 수집, 보존, 진열해야 할까?
이러한 생각 때문인지 내가 영국에 있는 대영박물관에 방문하여서 처음 마주한 감정은 '역겨움'이었다. 너무 나쁘게 표현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지만,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간 대리석 조각품을 보고 역겨움을 이길 수 없어 그대로 박물관을 뛰쳐나왔다. 수업에서 이야기한.... 햇빛이 아닌 박물관의 조명을 받으며, 완벽히 원래의 기능을 잃어버린 조각들이 그렇게 슬퍼 보일 수가 없었다.
내가 느낀, 갈라 포라스 김의 작품은 내가 가진 이런 고민과 비슷한 선상에 있다.
⟪우리를 속박하는 장소로부터의 영원한 탈출⟫ 이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미술관이 문 닫기까지 30분 넘게 작품 앞에 서 있었던 것 같다. 너무 멀뚱히 서 있어서 누가 보면 사연 있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 같다.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고 이 작품에서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를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계속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작품을 보면 볼수록 새로운 세계가 계속 펼쳐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현미경으로 세상에서 제일 작은 생물을 보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무한한 우주를 보여준다. 작가가 계속 이야기하는 문명과 그 삶 그리고 현대 이 모든 것을 표현한 작품이 아닐 생각된다.
석관과 고인돌과 같이 삶과 죽음을 경외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대의 오브제들이 현대의 박물관과 미술관, 문화유산 등의 시스템 속에서 본래의 기능을 잃고, 예술작품이나 국보로 분류되어 수장고와 전시장에 전시되는 상황에서 작가는 물건을 만들고 숭배하던 고대인들의 뜻과 현대의 제도를 화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MMCA 글 중)
국립현대미술관의 글에서처럼 이 웅장한 작품 앞에 있으면 나의 가장 작은 부분부터 우주까지, 심지어 과거 조상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물결 같은 형태와 색감 때문인지 몰라도 잔잔한 바람이 부는 초원 같기도 하고, 선조들의 영혼 같기도 하고 나를 품어주는 기분도 들고, 보면 볼수록 다양한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작품이 참 크고 아름다운데, 사진에 담아낼 수 없어서 아쉽다.
절대로 사진으로 작품의 영혼을 담을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더 디테일을 공유하고 싶어 작품의 일부분도 공유해 본다. 작품을 어떻게 마블링으로 만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잘 표현한 매체인 것 같다.
추가로 작품을 알아가고 작가의 생각을 알아가기 위해선 작품 옆 작가가 쓴 편지도 같이 보길 바란다.
방문 한 달이 넘어가는 시점에 전시 리뷰를 적고 있지만 지금도 그때의 전율이 잊히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지나고 글을 쓰다 보니 그때의 감동을 온전히 풀 수 없다. 전시를 본 날은 정말 할 말이 많았는데... 앞으로는 미루지 않고 그날그날 느낀 바를 옮겨야겠다.
전시 종료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꼭 다녀와 보길 바라며, 작품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 10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추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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