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노미야에서의 첫날 아침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4월로 날씨가 적당히 선선하여서 아침에는 얇은 카디건 하나 입고 산책 다니기 딱 좋았다. 햇살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선글라스를 꼭 끼고, 선크림도 잘 발라야 한다.
전날 도착한 후지노미야는 회색 구름이 가득해서 걱정하였는데 걱정을 비웃듯 하늘은 너무나도 맑았다. 이렇게 맑은 하늘인데 당일 저녁에 비가 올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도 의문이었다. 하늘 그 어디에 흐림도, 먹구름도 없는데 비가 온다는 말을 믿을 수 없지만, 실제로 비가 왔다. 날씨 변덕이 심한 것 같으니 꼭 일기예보를 보고 하루 일정을 짜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날은 시라토리아 폭포에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첫 차는 7:40에 출발이었고 다음 차는 12:40 출발이었다. 5시간 간격도 어마어마하지만 도무지 아침에 일어나 탈 자신이 없어 혼구센겐 구경 후 점심 먹고 출발하는 일정으로 계획하였다. 다행히도(?) 후지노미야 내는 걸어서 구경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다.
숙소에서 10여 분 걸으면 어제의 으슥했던 신사는 어디에도 없고 파란 하늘을 붉은 기둥이 세로로 가로지른다. 센겐 신사는 화산 활동이 활발하던 때에 산의 신을 달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곳의 도리이는 다른 곳의 도리이보다 유독 붉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날이 유독 좋다 보니 푸른색과 붉은색의 대비감 때문에 건물들이 강렬하게 눈에 들어온다. 걷는 곳곳의 웅덩이와 자갈들도 햇빛을 반사해서 모든 발걸음이 반짝반짝 빛났다.
혼구센겐 전경
홈페이지: http://fuji-hongu.or.jp/sengen/english/
FUJISANHONGU SENGENTAIS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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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ji-hongu.or.jp
도리아에서 시작한 길의 끝에 본당이 있다. 본당은 건물 같은 중문을 넘어서면 나온다. 아직도 이 신사에서 참배를 드리는지 본당 안쪽에 전통 옷을 입은 사람들이 예배를 준비하듯 부지런히 움직였다. 건물의 안쪽에 의자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시간에 따라 예배당이 열리고 그곳에서 다 같이 기도를 드리는 것 같았다.
참고로 후지노미야에서는 5월 말부터 가을까지 계속 다양한 축제가 연이어 있는데, 축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일정을 맞춰서 방문한다면 더욱 다채롭게 후지노미야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입구에 서면 한눈에 전체 공간이 눈에 다 들어올 정도로, 본당 공간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본당 건물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띠별 운세를 확인하거나 소원 카드를 걸 수 있는 판이 있고, 왼쪽은 운세 관련한 것들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개인적으로, 신사의 하이라이트는 본당 오른쪽의 계단을 내려오면 나오는 호수 공간이다. 본당에서 나와 호수만 보일 때는 물이 참 맑구나 싶었는데, 아래쪽 공간에 들어가자마자 이 세계에 온 듯한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 보라색 라일락이 머리 위에서 어깨높이까지 내려와 눈앞을 보라색 물결로 물들인다. 꽃잎의 물결 사이로 햇빛을 반사하고 있는 호수의 풍경은 가위 장관이다.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에 너울거리는 호수와 나풀거리며 마치 살아 숨 쉬듯이 흩날리는 꽃들을 보면 이곳이 21세기가 아니라 과거로 회귀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바람이 꽃잎과 나뭇잎들을 스치며 나는 소리도 참 정겹고 오랜만에 자연의 몽글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가끔가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꽃잎들이 줄지어 떨어지는데, 그럼 없던 전생의 기억이 튀어나와 소설책 한 권을 뚝딱 쓸 수 있을 정도이다. 살짝살짝 꽃잎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눈을 간질이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투명하게 빛나는 호수와 대비되게 왼쪽의 숲은 어둡고 짙은 녹색을 뿜어낸다. 짙은 숲의 색 때문에 산속 깊이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갑자기 숲 속에서 사슴이 튀어나와 호수의 물을 마시더라도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을 것이다. 마을의 중심에 있는 신사이지만 신기하게도 이 각도에서는 마을이 기묘하게 가려져 자연이 그려낸 화폭을 느낄 수 있다.
이 공간이 정말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고 다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날씨, 온도, 꽃의 삼박자가 완벽하였는데, 사진이 그 느낌을 전혀 잡아내지 못하여 너무 안타깝다. 투명함을 담기 위해 사진도 수십 장 찍고 영상도 찍고 보정도 해보았지만, 카메라로 담아내는 것은 절대 불가했다. 아쉽지만 최대한 내가 느낀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있도록 보정한 사진이다.
이 공간의 풍경 이야기만 너무 하였는데, 이곳은 물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이다. 한국 등산길에 약수를 마시듯이, 이곳에도 물을 받아먹을 수 있다. 번역기를 돌려보니 마셔도 되는 물이라고 적혀 있어, 궁금하던 찰나 들고 다니던 텀블러에 물을 담아 마셨다. 물은 깜짝 놀랄 정도로 차갑다. 다른 표지판에 적혀 있던 말이었지만,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이 물 또한 후지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일 것이다. 완벽히 아무 맛도 없지는 않고 약간 미네랄 맛같이 느껴진다. 익숙한 맛으로 따지면 삼다수가 있다.
이곳의 물 덕분에 후지노미야에서 지내는 내내 아무 탈 없이 맛있는 물을 실컷 마실 수 있었다. 덕분에 물 구매 비용을 아껴 저녁에 술만 더 마셨다.
눈을 잠시 감고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추천한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며 도시 속에서 잊고 있던 자연의 소리를 만끽할 수 있다. 폭이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신사 내 그 어느 공간에서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다. 눈과 귀에 계속해서 감미로운 자극이 더해져서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약 1년이 지난 지금도 시즈오카를 생각하면 이 신사의 푸르름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호수를 빠져나와 본당에서 더 멀리 걸어 나오면 더 큰 호수가 있고 그 위에 붉은색 다리 하나가 있다.
이날은 결혼식 사진을 촬영하는 커플이 있었는지, 전통 복장에 전통 양산을 쓰고 다리 위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사진을 찍었다. 다리를 건너서 있는 작은 신당에도 기도를 드렸는데, 이런 전통이 계속해서 현대 사회 속에 녹아있는 것이 참 부럽다. 마을이 작아 이곳이 사진 명당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함에도 계속해서 옛것을 새것처럼 누릴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인 것 같다.
신사를 중심으로 후지노미야의 주변은 층고가 낮은 건물이 대부분이고 중간중간 오래된 건물도 섞여 있어서 그런지 현대와 과거가 이어진 듯 보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신사에 있으면 정신이 아득히 먼 과거로 흘러가 옛 후지노미야를 계속해서 상상했다. 이때 상상했던 모든 것들을 글로 남겼었다면 판타지 소설 한 권쯤은 거뜬히 썼을 것이다.
호수의 끝은 천과 이어져 있다. 이 천 기준으로 신사와 마을이 나뉘어있다. 천의 중간쯤에 표지판이 하나 있는데, 이것을 읽어보면 천의 물은 후지산의 눈이 녹아 내려오는 것이라고 되어있었다. 4월 말에 방문했는데 후지산 정상에는 아직도 많은 눈이 보였고 눈이 다 녹은 7월 이후에나 등산할 수 있다고 하니, 천의 물이 가득한 것이 이해되지 않을 이유도 없다.
후지산의 눈이 녹은 물이라 그럴까, 호수와 마찬가지로 물이 매우 맑고 투명하다. 투명하다 못해 눈이 시릴 정도의 맑다. 만져보면 소스라치게 차갑기도 하다. 내천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계단이 정갈히 조성되어 있었는데, 들어가도 되는지 꼬마 아이 둘이 물속에 들어가서 물고기를 잡을 듯이 힘차게 뛰어다녔다.
밤에 잠깐 본 신사는 볼 것이 별로 없어 보였는데, 오히려 기대 없이 와서 그런지 더욱 재미있었다. 한 시간이면 구경하겠지 싶었는데 두 시간이 넘도록 이 공간을 흠뻑 체험했다. 덕분에 점심 먹을 시간도 부족하고 근처의 박물관도 갈 수 없었지만, 후회는 없다. 자연 속에서 거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혼구센겐 신사가 아주 마음에 들 것이다.
센겐 신사의 도리야 맞은편에는 푸드트럭같이 작은 음식점들이 모여있는 공간이 있는데, 야키소바가 유명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야키소바의 묵직한 밀가루 맛을 좋아하지 않아 사람들이 먹는 것을 구경만 했다. 가게에서 음식을 구매하면 중간 야외 테이블에서 밥을 먹을 수 있으니 편히 먹으면 된다.
마루가메 세이멘은 우동 전문점으로, 12시 전에 방문해 줄이 짧았지만, 평일 점심시간에는 사람들이 건물 밖으로 줄이 이어질 정도로 인기가 많은 집이다. 구글 맵의 별점 또한 4점 이상으로 매우 좋은 편. 우동 맛이 매우 뛰어나다기보다는 일본 특유의 '가성비'가 적용된 집 같았다. 300엔에서 시작하여 토핑을 추가할수록 가격이 오르는 집이다.
식당명: 마루가메 세이멘 (우동)
위치 : https://maps.app.goo.gl/sdeegfQGYgqovAnHA
Marugame Seimen Fujinomiya · 2-2 Chuocho, Fujinomiya, Shizuoka 418-0065 일본
★★★★☆ · 우동 전문점
www.google.com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문의 오른편에 종이 뭉치를 볼 수 있다. 이 종이는 포장을 할 경우에 작성하면 된다.
일본어를 몰라 종이를 들고 전전긍긍하니 점원분이 식당에서 먹고 갈 것이라면 종이는 필요 없다고 알려 주셨다. 앞사람을 따라 주문하고 손짓발짓으로 설명하면 원하는 우동을 받을 수 있다. 원래 여행의 묘미는 말이 안 통하는 지역에서는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하는 게 아니겠는가.
즉석 우동에 가까운 느낌의 집이다. 면은 온면과 냉면을 선택할 수 있다. 소스도 다양하게 준비가 되어 있으니, 기호에 맞춰 주문하면 된다. 일본 말을 잘 몰라 머뭇거리고 있으니 (물론 내가 매우 귀찮으시겠지만) 그림이 있는 메뉴판을 보여주셨다. 그림을 보고 마가 곁들여진 것으로 주문했다. 면과 소스를 정하면 뒤에서 바로 면을 삶아 그릇에 담아주신다.
여러 종류의 튀김이 있고 원하는 튀김을 앞접시에 담으면 된다. 어차피 글을 읽지 못하니 모양을 보고 재료를 추측하고 담았다. 실제로 나는 오징어인 줄 알고 담았는데 닭 안심이었다. 예상치 못한 재료일지라도 튀김 자체가 워낙 맛있어 전혀 실망감은 전혀 없었다. 주문을 끝내고 나면 줄의 끝에서 결재하고 원하는 자리로 이동해서 먹으면 된다.
참고로 계산대 옆의 공간에는 튀김 부스러기와 파 같이 추가로 넣을 수 있는 재료들이 준비되어 있다. 한 번 확인해보고 추가하고 싶은 재료들이 있다면 추가하면 된다. 튀김 간장은 자리에 준비되어 있다.
여기까지가 아름다웠던 생일날 오전이었다.
밥을 먹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롤러코스터 하루가 시작된다. 클라이맥스로 다가가는 이야기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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