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써보는 일본 여행기.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일부 내용들은 바뀌었을 수 있지만, 시즈오카의 매력을 나눠보고 여행의 기억을 떠올릴 겸 써본다. iPhone 11로 찍은 사진들이라 현지 분위기를 100% 담을 수 없었지만, 아쉬운 사진으로라도 시즈오카 현지를 공유해 본다.
23년 4월 마지막 주에 출발하여 약 1주일 일정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본디 생일 기념으로 미국을 다녀오려고 하였으나 미국에 있던 친구와의 일정 등이 꼬여 생뚱맞게 일본에 가게 되었다. 이 당시 제주항공에서 시즈오카 노선이 새로 생기 프로모션이 많았고 동시에 공항에서도 시내까지 나가는 버스를 30분 단위로 운영하였다. 코로나 이후 첫 여행으로 인천공항 도착한 것만으로도 심장이 너무 뛰었다.
'시즈오카'를 들으면 대부분 어디인지 모를 수 있는데, 오사카와 도쿄 중간보다 조금 아래 위치하고 있으며 후지산이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 시즈오카 공항명에 후지산이 들어가는 것이고, 많은 관공서와 도로명에 후지산이 들어간다. 하지만 후지산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만큼 공항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후지산이 보인다! 아쉽게도 나는 창가 자리를 앉지 못하였지만, 시즈오카에 다 와 가면 창문으로 후지산을 볼 수 있다. 왼쪽 오른쪽 모두에서 후지산을 볼 수 있지만 왼쪽 창가에서 후지산을 더 오래 볼 수 있으니 좌석 예매할 때 참고하자.
책으로 읽고 이미지로 보았을 때 얼마큼 큰 산인지 감이 잘 안 오는데, 실물을 보면 그 위용이 대단하다. 어릴 적부터 내 머릿속 후지산은 북한산 정도의 이미지로 생각하였는데 아니다, 확실히 그보다 압도적으로 크다. 5월이 다 되어가서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산 정상에는 눈이 많이 남아있었으며, 아직 위험한 기간이라고 등산도 못 한다!
소도시답게 매우 작은 공항이다. 김포의 반 정도도 안 되는 것 같다.
출국장을 나오면 정면에 렌터카 할 수 있는 곳이 많고 우측으로는 세븐일레븐이 있다. 나는 공항에서 운영하는 버스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세븐일레븐에서 돈도 뽑고 마실 것과 간식을 사 가볍게 배를 채웠다. 내가 방문했을 때 있었던 무료 셔틀버스는 5월까지 운영한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방문하기 전에 셔틀이 있는지 꼭 알아보자!
셔틀버스가 아닌 일반 버스의 배차 간격은 매우 넓었고 심지어 4시쯤이 마지막 차였던 것 같다. 괜히 출국장 나오자마자 렌터카 해주는 곳이 많은 게 아니다. 시즈오카 다니는 내내 느낀 것이지만 시내를 제외하고는 대중교통이 일찍 끊긴다. 내가 본 가장 일찍 끊기는 버스는 무려 오후 4시였다... 이런 버스 때문에 다양한 좌충우돌 여행 스페셜 이벤트가 중간중간 발동하였다. 하여튼 걷는 것이 좋고, 일찍 일찍 다니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고, 많은 곳을 못 다니는 것이 괜찮은 게 아니면 렌터카를 하자. 렌터카 이야기는 이즈반도 이야기 할 때 더 풀어보겠다.
시즈오카는 녹차로 유명하다. 실제 녹차밭이 곧곧에 있고, 하겐다즈에 들어가는 찻잎은 이곳에서 재배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도 버스를 타고 나가는 길에 많은 녹차밭을 볼 수 있다! 명소가 녹차 재배지이기도 하고 많은 기념품에 녹차가 들어간다. 녹차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여유를 즐기는 사람에게 시즈오카는 좋은 선택지일 수 있다.
셔틀버스의 종점은 시마다 역으로, 역에서 기차를 타고 시내에 들어가면 된다. 총 2개의 플랫폼이 있다. 버스를 같이 탄 대부분의 사람은 시즈오카역 또는 후지노미야로 가는 듯했다. 나는 시내가 아닌 이즈반도라는 시즈오카 내에서도 조금 더 안쪽에 위치한 곳을 가기 위하여 여행객 대열과는 멀어졌다. (옛날 기억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그들은 오른쪽 플랫폼으로 내려갔고, 나는 왼쪽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사람에게 지쳐 재충전 목적으로 간 여행으로 애초부터 시간을 버릴 계획이었다. 사람이 없는 지역이면서 온천이 유명한 곳을 찾다 보니 이즈반도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지역 같았다. 이즈반도의 동쪽과 서쪽 중 어디를 방문할지 고민 많이 하다 동쪽 이토에 마음에 드는 숙소가 있어 이토역까지 가는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시마다 역에서 Tokaido 선을 타고 약 3시간가량 더 이동해야 도착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열차가 계속 지상으로 다니고 자연경관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았다. (전망뿐만 아니라 이 당시 실을 들고 가서 가방을 뜨며 다녔기 때문에 더더욱 더 지겹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타미 역에서 기차를 갈아탔어야 하는데, 새벽 4시부터 일어나 먹은 것이 없어 다리도 펼 겸 구경도 할 겸 역의 백화점에서 점심을 먹고 이동하기로 했다. 아타미 역은 관광지 그 자체였는데 정말 놀랍게도 외국인 없이 일본인들로만 가득하였다! 백화점 안의 식당에도 영어 메뉴판이 없어 구글 번역기로 번역 돌려 밥을 주문했을 정도...
백화점 밖에는 일본 특유의 시장 같은 곳이 있었는데 크기가 크지 않아 밥 먹고 산책하며 구경하기에 딱 좋았다. 근데 내가 방문한 날이 휴일인지 아니면 시간이 애매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문 연 곳이 많지는 않았다. 대부분 가게는 작은 잡화나 기념품을 팔고 있다. 특히 지역 특산품과 관련되어 보이는 음식이 많았는데 여기가 관광지라 상대적으로 불가가 비싸다는 말이 있으니 잘 판단하고 쇼핑을 즐기도록 하자.
밥을 먹고 나서 다시 30분가량 기차를 타고 이토로 들어간다.
이토로 들어가는 기차는 조금 더 작은 규모고, 더욱 낡은 듯한 느낌이 드는 기차였다. 하지만 분위기가 이토와 참 잘 어울렸다. 산을 통과해서 터널을 몇 개 통과하는데 터널을 지나고 나면 이즈반도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다. 지하철에 탄 대부분의 사람은 그 풍경이 익숙한지 핸드폰을 보거나 책을 보았지만, 나는 정말 단 한순간도 창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여담으로,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면 아타미역을 지나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조차 시즈오카 지역의 바다는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림으로도 아름다운데 실제로 본다면 정말 속이 뻥 뚫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바다라는 곳이 물이 있는 곳인데 참 신기하게도 한국의 바다와 느낌이 매우 달라서 눈을 사로잡았다. 자연경관을 좋아하고 여행 일정이 충분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방문해 보는 것을 고려해 보자.
이토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목적으로 한 조건이 모두 충족될 것이라는 확신을 받았다. 거리는 한산하고 여유가 가득하다. 실제로도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고 보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인들이다. 일본이 고령화가 심하다는 이야기는 대도시에서 크게 느끼지 못하였는데 이즈반도에 오니 확실히 고령화가 진행된 국가라는 것을 크게 체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어른들이 주는 그 여유로움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머무른 숙소는 K's House Ito Onse이라는 곳이다. 일본 전역에 약 3~4개 정도의 체인을 가지고 있는 도미토리 같은 곳이다. 하지만 도미토리고 가격이 싸다고 해서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이 숙소를 택한 이유는 실제 엄청 오래된 고택을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예약 페이지에 숙소 설명을 읽다 보면 참 신기한 곳이 아닐 수 없다. 이토의 대부분 건물들은 오래된 느낌이 여실히 느껴지긴 하지만 이 숙소만큼 역사적으로 잘 보관된 느낌을 주는 건물은 또 없다.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온천의 입구처럼 생긴 곳이 진짜 입구이다.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온천 건물을 상상력으로만 어떻게 저런 이미지를 구상했을까 하며 신기해했는데 100% 허상에서 지어 올린 것이 아니었다. 옛날 영화에서나 볼 직한 건물에서 묵을 수 있다는 것은 이토 여행의 또 다른 묘미다.
건물은 들어감과 동시에 오래됨을 느낄 수 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마룻바닥이 자신의 존재감을 들어낸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도미토리어서 그럴 수 있지만) 나를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백인 여자분이셨다. 일본말도 참 잘하셨는데 전통적인 공간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외국인가 영어는 묘한 이질감을 주었다. 이곳에 묵는 손님들도 외국인(주로 백인)과 일본인 분들이 5:5 비중으로 있었다. 한국인이 없으니 보물 찾기에서 당첨을 뽑은 듯한 느낌. 이래서 여행은 정보가 없는 것으로 가는 것이 재미있다.
이곳은 공용 공간이 많은 편인데, 나는 화장실이 있는 방으로 예약 하였다. 화장실이라고는 하지만 조그마한 세면대와 변기가 있는 정도기는 하였지만... 샤워는 프라이빗 온천 공간이나 공용 탕을 사용해야 한다. 시즈오카에 후지산이라는 활화산이 있다 보니 괜찮은 온천들이 많은 것 같다. 혼자 여행이라 나는 비싼 료칸이나 온천은 옵션에 없었지만, 어떤 숙소를 선택하든지 대부분 숙소에는 공용 탕이라도 있을 것이다. 공용 탕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이 숙소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있을지도... 하지만 그 정도는 개의치 않고 공간의 분위기가 중요한 나에게 이곳은 최고다.
료칸처럼 새것도 아니고 밥도 안 주지만, 그렇기에 이 방에 앉아있으면 마치 내가 19세기의 일본에 들어온 기분이다. 모든 창은 창호로 되어있고, 테라스 쪽의 창만 유리로 되어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우리가 옛날 찻장에서나 보는 얇은 유리가 달린 미닫이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공간을 내가 숙소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니 너무 매력적이다. 열쇠 또한 카드키가 아니라 길게 생긴 독특한 열쇠다!
테라스 쪽은 한 명이 누울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있는데 도착하자마자 그 공간에 누워 햇살도 쬐고 사진도 찍고 바로 옆에 흐르는 물소리도 들으니 그간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다. 이날 이 숙소에 누웠을 때의 행복감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고 사진으로 담아낼 수도 없다. 유럽 거리와도 다르고 일본 도심과도 다른, 시골에서의 주는 그 고즈넉함과 햇살의 따스함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순간을 위해 힘들지만 매번 여행길에 오르는 게 아닐까 싶다.
내 체감으로 이토는 한국의 태안반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일본에서는 어떤 이미지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일본인들에게도 이토는 온천을 위해 오는 곳이라는 것이다.
잠시 쉬었다가 마을 산책을 위해 다리를 건너며 돌아보면 숙소의 뒷모습과 청명하게 빛나는 바다를 볼 수 있다.
이토는 조금만 걸으면 바로 바다가 나온다. 물이 없어서 다리가 왜 있지 싶은 곳들은 썰물 시간이 되면 바닷물로 가득 차게 된다. 수영하기 좋은 바다라기보다는 산책하기 좋은 바다이다. 숙소 주변에는 모래가 있는 해변은 없고, 모래 해변은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다. 금빛의 모래가 아닌 살짝 검은색이 비치는 모래이다! 화산재인지 뭔지 너무 궁금한데 딱히 물어볼 곳도 검색도 귀찮아서 시즈오카의 의문 1로 남겨둔다.
숙소에서 7분 거리에 Food Sotre Aoki라는 곳에서 장을 볼 수 있고 그 맞은편에 꽤 큰 Lawson도 있다.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는 로슨 편의점을 찾기가 힘들다고 생각했었는데, 신기하게도 이토만은 로슨이 참 많았다.
슈퍼 안은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었는데 그 중 한국 음식도 많이 보여 조금은 놀랐다. 내가 발견한 것은 불닭, 배홍동 그리고 둥지냉면. 불닭볶음면이야 챌린지 때문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배홍동과 둥지냉면은 조금 놀라웠다. 특히 둥지냉면은 이름표기까지 모두 일본어로 바뀌어 있었다! 역시 한국인에게 맛난 건 외국인에게도 맛있을 수밖에 없나 보다.
슈퍼에서 나와 바다가 보이는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선착장이 나온다. 선착장 앞에서는 어르신들이 손시를 많이 하고 계시는데, 이는 선착장뿐만 아니라 공원에서도 다리 위에서도, 낚싯줄을 내릴 수 있는 곳이면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낚시를 하고 계셨다. 말을 걸 용기가 없어 지나쳐가며 보았는데 다들 손바닥 반만 한 물고기들을 많이 잡으셨다.
일본에선 1일 1 맥주 필수. 한국에서 보지 못한 맥주를 선택했다.
배 앞은 사유지에 들어간 것 같기도 하여 조금만 더 걸어 보이는 벤치에 앉아 간략한 저녁을 먹었다. 숙소로 돌아가서 먹을 수도 있지만 혼자 있고 싶기도 하고 바닷소리가 듣고 싶어 눈앞에 보이는 벤치에 앉아 멍 때리며 사람 구경을 했다. 머리를 비우고 고요 속에 앉아 쉬는 여행을 계획한다면, 이토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주변에 바다가 많아서 그런지 해가 지고 나면 꽤 쌀쌀했다. 해가 지는 것을 구경하며 숙소로 귀가.
머무른 숙소가 오래된 건물이라고 말한 것처럼, 2층에는 게이샤 공연을 할 직한 공간이 있다. 낮에는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아기를 데리고 구경을 하는 것 같았는데, 영화가 아닌 실제로 이런 장소를 보니 조금은 신기했다. 숙소에서는 일정에 따라 공연도 진행하는 것 같은데,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카운터에서 물어보면 된다.
방도 형광등이 아니라 스텐드가 있었는데, 대나무 공예품으로 만들어진 조명이어서 불 하나만 켜두니 방이 반짝반짝 동화책에 들어온 것처럼 빛났다.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사람들 걷는 소리가 잘 들리기는 한다. 그래도 모두 10시가 넘는 시점부터는 매우 조용히 다니는 편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토에서의 첫날 밤은 반짝반짝 빛나는 밤하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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